2015년 7월 23일 목요일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 키웨스트와 아바나에서의 일 년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 - 10점
아널드 새뮤얼슨 지음, 백정국 옮김/문학동네
대작가 헤밍웨이의 독보적인 작가 수업!

“절대로 살아 있는 작가들과 경쟁하지 말게. 그들이 훌륭한 작가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으니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죽은 작가들과 겨루게. 그들을 따돌릴 수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여겨도 무방해. 좋은 작품이란 작품은 몽땅 읽어둬야 해. (…) 어떤 예술에서고 낫게 만들 수 있다면 뭐든 훔쳐도 괜찮아. 단, 언제나 아래가 아니라 위를 지향해야 해. 그리고 남을 흉내내지 말게. 문체란 말이야, 작가가 어떤 사실을 진술할 때 드러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어색함이라네. 자기만의 문체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남들처럼 쓰려고 한다면 자기만의 어색함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의 어색함도 아울러 갖게 돼.”
_본문에서

“나는 사람들이 나를 헤밍웨이에게 갖다붙여 이야기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그의 소설과, 그로 인해 바다에 대한 로망을 갖는 것은 그렇지 않다. 돌이켜보면 사람들에게 바다를 친숙하게 하고, 또는 친숙하고 싶어하는 존재로 만들어낸 작가 중의 최고가 헤밍웨이 아니던가.”
_한창훈(소설가)

헤밍웨이가 인정한 단 한 명의 문하생이 기록한 작가 수업!
그리고 걸작 『노인과 바다』 창작의 비밀!!


아널드 새뮤얼슨이 만나기 전의 헤밍웨이는 이미 문학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크게 성공을 거둔 대작가였다. 1926년에 출간된 『태양은 다시 뜬다』는 전후 젊은이들의 방황과 환멸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베스트셀러가 되는 동시에 ‘잃어버린 세대’의 바이블이 되었으며, 1929년의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큰 성공을 거뒀다. 1932년에는 투우를 소재로 한 『오후의 죽음』을, 1933년에는 『승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마라』를 출간한 뒤 두 달 동안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두 번째 아내인 폴린과 키웨스트로 막 내려와 있던 것이 1934년 봄이었다. 이 1934년에 헤밍웨이는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될, 아프리카에서의 사냥, 문학과 인생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쓰고 있었고, 낚싯배 ‘필라’호를 구입하여 본격적인 새치 낚시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1934년은 헤밍웨이가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에서 쿠두영양 사냥을 묘사하고, 필라호를 구입하고, 북대서양 새치의 재분류 작업에 일조하고, 향유고래를 향해 작살을 던졌던 흥미진진하지만 널리 기록되지 않은 (…) 일들이 벌어진 해였다.”

아널드 새뮤얼슨은 1912년 노스다코타에서 노르웨이에서 이주해온 밀 재배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미네소타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했으나 학위증 수수료 5달러를 내고 싶지 않아 공식적으로 졸업은 하지 못했다. 대공황 시절 대학을 나온 청년 새뮤얼슨은 1932년 길에서 차를 얻어 타고 다니면서 이발을 해주는 대가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급조된 관현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켜기도 했다. 일요판 트리뷴에 ‘방랑자’라는 제목의 연재물을 기고하면서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가던 중 『코즈모폴리턴』지에 실린 헤밍웨이의 「횡단여행」을 읽고 그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그를 만나기 위해 부랑자 행색으로 키웨스트에 도착한다. “일이 잘 풀리면 그가 몇 분만이라도 틈을 내어 글쓰기에 대해 얘기해줄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그런 새뮤얼슨을 처음 보고 헤밍웨이는 자신의 집에 눌러붙으러 온 식객으로 잠시 오해하지만 새뮤얼슨이 작가지망생이고 자신의 작품을 읽었다는 얘기에 환대하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날 빌린 책을 돌려주러 집에 들른 새뮤얼슨에게 헤밍웨이는 자신의 낚싯배 필라호가 뉴욕에서 선적되어 몇 일내로 올 것이라면서 배에서 잠을 자면서 돌보는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이렇게 필라호에서 아널드 새뮤얼슨은 그후 1년 동안 헤밍웨이와 그의 선원들, 친구들과 교유하며 새치 낚시를 하면서 헤밍웨이로부터 작가 수업을 받게 된다. “그 1년은 그 둘이 한 모든 일이 어떻게든 글쓰기와 연관된 시절이었다.” 아널드 새뮤얼슨은 헤밍웨이가 ‘마에스트로’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인정한 유일한 문하생이 되었”고 헤밍웨이는 새뮤얼슨에게 닮고 싶은 멘토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1년 동안 함께 생활한 후 작가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고향 미니애폴리스로 돌아가는 새뮤얼슨에게 헤밍웨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보다 더 잘 쓴 순 없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절대 아무것도 보내지 말게. 근사한 걸 썼다 싶으면 원고를 갖고 이리 내려와. 언제라도 기꺼이 살펴보고 조언해줄 테니. 그게 지금부터 6개월 후든, 1년 후든, 2년 후든 오기만 하면 잠잘 곳은 우리가 꼭 마련해주겠네.
아무튼 하늘이 무너져도 낙심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게. 자네 글에 대해 절대 걱정하지 말게. 그러면 진이 빠지고 무기력해져. 운동을 많이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게. 그게 제일 중요해.”

새뮤얼슨이 키웨스트를 떠난 뒤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관계를 지속했다. 새뮤얼슨의 첫 소설 「뜨내기를 위한 멕시코」(1937년)와 「하나도 너무 많아」(1955년)가 『에스콰이어』지에 실렸고, 헤밍웨이가 다음과 같은 축하 전보를 보냈다. “에스콰이어 건 최고의 기쁨. 아주 자랑스러움. 자네의 단편이 편지만큼 훌륭하다면 다른 것도 팔 수 있을 거라 확신함. 행운을 빎.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에스콰이어』지에 젊은 새뮤얼슨과 함께한 시간을 담은 소품 「마에스트로를 위한 모놀로그」를 썼고, 헤밍웨이가 우울증과 알코올중독, 고혈압, 편집증에 시달리다 케첨의 자택에서 자살한 1961년 10월에 『에스콰이어』지에는 다음과 같은 아널드 새뮤얼슨의 발언이 들어간 ‘E. H.: 마에스트로에게서 온 코다’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어니스트는 안간힘을 다해 살았습니다. 그가 택한 최후의 행동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의도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에 대해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습니다. 그 모든 고통을 말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한 것입니다.” 

이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은 새뮤얼슨과 헤밍웨이와 필라호에서 함께한 1년의 기록이다. 키웨스트와 쿠바의 아바나, 멕시코만류가 흐르는 바다 위 거친 바다낚시 현장에서 대작가 헤밍웨이에게 작가 수업을 들으며 그를 추종했던 작가지망생 아널드 새뮤얼슨의 글을 통해,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영혼이 자유롭게 펄떡이는 헤밍웨이의 육성과 대작가다운 거침없고 독보적인 작가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의 새치 낚시 경험이 생생하게 반영되어 있는 걸작 『노인과 바다』가 어떻게 창작되었는지, 그 비밀을 엿보게 한다. 또한 독자들은 저자 새뮤얼슨이 묘사한 바다 위 스포츠낚시가 펼쳐지는 필라호에 동승하여, 새치와 고래, 만새기, 상어를 잡는 과정을 생생하게 느끼는 동시에 어니스트 헤밍웨이 혹은 E. H.라는 작가가 어떤 인간이고, 어떻게 글을 쓰는지, 어떻게 대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다와 헤밍웨이에 대한 로망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을 읽다보면, 왜 아널드 새뮤얼슨을 헤밍웨이가 문하생으로 인정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1899~1961)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파크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캔자스시티 스타지에서 수습기자로 일했다. 1918년 제1차세계대전에 적십자사의 구급차 운전병으로 참전,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됐으나 큰 부상을 입고 이듬해 귀국했다. 1921년 캐나다 토론토 스타지의 해외특파원으로 파리에 갔다. 파리에 체류하는 동안 스콧 피츠제럴드와 에즈라 파운드를 비롯한 유명 작가들과 교유했다. 1923년 『단편 셋과 시 열 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26년 전쟁으로 상처 입은 이들의 상실과 허무감을 그린 『태양은 다시 뜬다』를 발표하여 피츠제럴드, 포크너와 더불어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작가로 주목받았다.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을 발표하여 큰 사랑을 받았다. 1937년 스페인 내란에 ‘북아메리카 신문연맹’ 특파원으로 종군했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발표하여 전쟁문학의 걸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52년 9월 『라이프』지에 발표한 후 단행본으로 출간된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 만년의 걸작으로, 쿠바 연안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가는 한 노인의 이야기를 짧고 강렬한 이미지로 그린 소설이다. 당시 작품이 실린 『라이프』지 9월호는 불과 이틀 만에 5백만 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으로 1953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1954년에는 현대문학의 스타일에 미친 영향력을 인정받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